추석은 누구나 마음 다스리기가 필요하다. 아빠를 보내고 첫 명절.
엄마는 기어이 작은 밥상이라는 이름에 차례상을 차리셨다.
아들에겐 ”밥과 국만 아침상에 오리려 한다. “ 하셨고, 내겐 ”문어와 포도만 상에 올려 드리면 된다.” 하셨다.
추석당일 날도 깨어나기 전에 아빠사진을 바라보며, 네가 밥상 차려 줄 테니 밥 먹고 가 하신다.



그렇게 차려진 추석 밥상에 더 이상 음식을 놓을 자리가 없다.
새벽부터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3장씩만 부치겠다던 전은 두툼하게 쌓으니, 두 접시가 넘었다. 육전까지 세 접시다.
나물도 세 가지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다.
과일은 배, 사과, 포도(샤인머스켓, 머루), 귤이다. 여기에 밤, 대추까지.
어물은 제일 큰 걸 샀다며 자랑하는 가오리, 북어, 문어, 꽃모양이 난 긴 건 이름도 모르겠다.
전 종류도 다양하다. 우엉 전, 파전, 꼬치전, 동그랑땡, 표고 전, 육전 각각 세장씩.
또 뭐가 있는가?. 아, 며느리가 사 온 민어찜, 송편과 밥과 국에 법주다.
울 엄마 용돈주머니가 가벼워지셨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사진 찍어 아들에게 보여주라고 신나 하신다.
내가 술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엄마가 술과 인사를 드린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 가득 하회탈 웃음이 퍼진다.
울 딸내미 둘도 인사드리겠다 하여 그리한다. 그러고 앉아서 한숨을 돌린다.



아차, 엄마가 배가 빠졌다한다. 허허허. 아들이 사 온 건 빠지면 안 되지.
난 배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하시는 데로 뒤 심부름만 했을 뿐.
아들이 사다 준 배를 뒤늦게 올려본다. 크기도 엄청나다.
어휴 엄마도 아들도 손은 엄청 크다.



엄마의 귀한 아들은 추석전날 내려와서 성묘를 하고 당일 올라갔다.
그는 결혼 후 올케네와 명절을 보냈다. 집도 음식도 대접도 훨씬 나으리라.

엄마와 아빠는 명절엔 딸내미들과 함께 했다.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얼굴 보기 힘든 귀한 아들.
올케도 명절에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게 당연하기에 엄마와 아빠는 그리하라 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호인에 평화주의자다.
장례식 때 회의를 해서 우린 아빠기일에 성묘만 하기로 했다.
그 결정에 따르라 나도 한마디 거들어본다. 나도 평화주의자다.



남동생 가족은 엄마 집에서 하루 밤도 함께 보넨 적이 없다.
집이 좁아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겐 그 또한 그것이 최선이리라.
그저 각자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효도의 온도차는 편차가 심하다.



음식준비의 힘겨움을 아는 나는 추석전날부터 가서 파 다듬기부터 도왔다.
새벽에 일어나 손가락을 기름에 튀겨가며 전을 부쳤다.
땀에 샤워를 하며 그저 그렇게.
몇 년이나 하시겠나?. 엄마 나이 80세이다.
아빠를 향한 애잔한 마음이 이제 좀 덜 하시길.
그리움의 크기가 점점 더 작아지길.
이렇게 아빠를 보내고 첫 추석은 지나간다.



난 이런 걸 일 년에 13번을 18년간 계속했었다.
덕분에 공황장애와 깊은 우울로 정신은 피폐함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마음치료는 진행 중이다.
누구든 나처럼 마음에 피고름이 생기지 않기를.



여동생들은 10시쯤 한 명씩 도착했다.
차례로 차려진 밥상에 인사를 올리고 술을 따랐다.
엄마는 곁에서 그저 지켜보셨다.



그제사 엄마는 ’ 콩나물도 안 올렸다.‘ 한다.
내가 ’ 아빠 콩나물 안 드신다 ‘ 한다. ’
아구구 끝도 없네. 찐사랑이려니.
‘복도 많은 울 아빠. 이 한 세상 잘 살다 잘 가셨네.‘
사랑하나 얻고, 가면 그 걸로 충분하다.

아빠상의 나물과 밥을 내리고, 밥솥에 밥을 더해 튀각과 김을 더한다.
그저 그렇게 아빠의 아침밥상을 양푼이에 한가득 비벼본다.
그렇게 나눠 비벼 먹는 제삿밥은 탕국과 잘 어울려 맛나다.



각종 전과 과일을 깎아 먹으며, 이야기보따리는 풀린다.
오는 동안 차 밀린 이야기들 사이로 조카주려 울딸내미가 다이소에서 산 티니핑? 핫츄핑?을 건넨다.
아이들은 야호~를 지르고, 색칠하기 퍼즐놀이, 스티커놀이, 옷 입히기에 빠져든다.
둘째는 집을 산 썰을 풀어놓고, 나는 백수가 된 뒤 더 바빠진 일상으로 주저리주저리.



식사를 하고 나니 막내의 아이들이 윷놀이 후에 1,2,3위 경품이라며, 선물을 한 꾸러미 내놓는다.
그렇게 펼쳐진 윷놀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 윷, 걸, 개, 도, 모판에 말들이 힘차게 달리고, 모두의 목소리톤도 점점 올라온다.
일 년에 두어 번 하는 윷놀이는 오늘따라 신명 나고, 게임의 묘수는 불꽃을 튄다.



이 것이 명절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흐르는 시간은 어느덧 헤어짐을 부른다.
아이들은 헤어지기 싫어 울고, 아쉬움은 다음 명절을 기약하며 용돈으로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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