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땠어?. 근무하면서 속 섞이는 빌런은 없었니?. ”
걱정 가득한 나의 질문에 ㅇㅇ이는 “괜찮았어.”로 씩씩하게 대답한다.
음 하고 머뭇대다가 N. 근무 중 중요 에피소들을 풀어낸다.
“같이 근무하는 선배들이 난이도가 좀 높을 뿐이지.”한다. 00 이는 대학병원 간호사다.
상급기관인 대학병원은 24시간 3교대가 기본이다.
이제 이 년째를 접어들었고, 그동안 동기들의 반 이상은 그만두었다.
말로만 들었던 태움 간호사는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ㅇㅇ이도 만만치 않다.

4년 내내 샤부샤부집 알바를 꾸준히 했다.
어지간한 빌런 고객은 능숙하게 해결하는 내공을 지녔다.
그러면서 4년 중 한 번도 학자금 달라고 한 적 없이,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친 별난 아이다.

그러한 그녀가 밤근무를 마치고 퇴근 중이다.
“엄마, 나 마쳤어.”한다.
지금은 아침 여덟 시다.
나는 그저 들어줄 뿐
그녀의 에피소드에 ‘그렇구나. 아하. 저런. ’ 하며 격한 리액션을 해 본다.
지친 그녀의 마음에 내가 곁에 있음이 전해 지기를.

가족 간의 대화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근무 중 동료와의 대화는 지극히 사무적이다.
단순하게 말을 바로바로 응답하고, 감정에 솔직한 사람일수록 대화는 쉽다.
속 마음과 바깥 마음이 거의 같은 거다.
살아 보니 겉으론 웃고 세상 좋은 사람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할 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자신이 불리한 순간에 뒤통수치는 사람도 많다.

그녀의 팀에 그런 오래된 강적들이 2~3명씩이나 있단다.
심지어 뒤에서도 아니고 여럿이 있는 곳에서 말을 생각 없이 쏘아붙이는 빌런들이.
어제 추석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역옆 주차장에서 차에서 쉽게 내리지 못했다.
보네야 하는 내 마음도 미어진다.
그날ㅇㅇ이 Night 근무다.
상태가 괜찮은 환자들이었어야 하는데 빌어본다.
그러고 무심이 난 잠을 잤다.

그래도 그녀의 에피소드는 평소보다는 안정적이다.
항암 환자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며 환자들 걱정을 많이 하지만, 빌런동료들도 어제는 양처럼 온화했단다.
책임간호사는 한 Duty에서 환자의 생명이라는 무게를 오로지 짊어져야 하기에 신경이 곤두서는 게 맞다.
Acting N. 는 그 무게를 가늠하기에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교대근무로 인해 무너진 생체리듬은 반드시 건강한 음식과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숙사생활이고, 근무 후에 돌덩같은 몸은 루틴을 지켜지 못한다.

암환자가 늘고 있다.
그들 또한 무너진 일상에서 시작되었겠지.
먹는 게 건강하지 않으니 몸에 독소는 쌓인다.
그래서 그런지 암은 유전적인 요인보다 음식이나 운동 관리가 안 돼서 발병하는 경우가 흔하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군에서도  발병률이 높다는 전문가의 말은 꾀 설득력이 있다.
스트레스 피하고 싶어도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걸로 보면 우리ㅇㅇ이는 3교대 근무 너무 오래 안 했으면 좋겠다.
남들 잘 때 자고 남들 일어날 때 일어나서 정시에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일.
몸에 무리가 같지 않는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일하면서 즐겁고 그 일로 인해서 지치지 않고 열정에 행복하다면 그뿐인데.
그런 일엔 돈이 안된다. 너무 어렵다.

그녀는 PT를 하러 체육센터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N근무 퇴근길에 운동을 간다고?. 너무 무리하면 안 돼 ‘
하지만 N근무가 끝나도 잠을 쉽게 들 수 없다.
바디 사이클은 아직 일하는 중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의 소음이 벽을 비집고, 내 귀에 전해진다.
창밖을 환하게 해가 떠 있어, 안대를 해도 쉽게 잠들 수 없다.
나는 그녀의 말에 의미를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근육이 올라오면, 아픈 횟수는 좀 더디게 오는 것 같다.
운동을 즐기는 건 좋은 생각이긴 하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꼭 갈려고 노력해라 “.라고 응원을 해 본다.

난 운동을 일주일에 4번으로 늘렸다.
운동하러 문밖을 나가는 걸음은 매 순간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도 운동하고 난 뒤의 땀 흘리는 상쾌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녀도 그동안 공부 하느라 굳어졌던 어깨며 거북목의 자세가 많이 펴졌다.
근육량이 느니, 표정도 활기차다.
건강도 돈이 돼야 얻어진다.  건강이 첫 번째 챙겨야 할 투자다.
자기 관리도 돈이 베이스가 되는 사람이 가능한 거야.
돈이 없으니 먹는 것도 인스턴트를 많이 먹게 된다. 라면, 국수, 빵.
입을 만한 옷이 없으니 외출도 안 하고, 씻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러다 문득 병이 찾아오면 제대로 치료 안 하고 버틴다.
병은 깊어지고 종국엔 손을 쓸 수 없다. 그렇게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최악이다.

그래서 나와 그녀는 돈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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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누구나 마음 다스리기가 필요하다. 아빠를 보내고 첫 명절.
엄마는 기어이 작은 밥상이라는 이름에 차례상을 차리셨다.
아들에겐 ”밥과 국만 아침상에 오리려 한다. “ 하셨고, 내겐 ”문어와 포도만 상에 올려 드리면 된다.” 하셨다.
추석당일 날도 깨어나기 전에 아빠사진을 바라보며, 네가 밥상 차려 줄 테니 밥 먹고 가 하신다.



그렇게 차려진 추석 밥상에 더 이상 음식을 놓을 자리가 없다.
새벽부터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3장씩만 부치겠다던 전은 두툼하게 쌓으니, 두 접시가 넘었다. 육전까지 세 접시다.
나물도 세 가지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다.
과일은 배, 사과, 포도(샤인머스켓, 머루), 귤이다. 여기에 밤, 대추까지.
어물은 제일 큰 걸 샀다며 자랑하는 가오리, 북어, 문어, 꽃모양이 난 긴 건 이름도 모르겠다.
전 종류도 다양하다. 우엉 전, 파전, 꼬치전, 동그랑땡, 표고 전, 육전 각각 세장씩.
또 뭐가 있는가?. 아, 며느리가 사 온 민어찜, 송편과 밥과 국에 법주다.
울 엄마 용돈주머니가 가벼워지셨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사진 찍어 아들에게 보여주라고 신나 하신다.
내가 술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엄마가 술과 인사를 드린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 가득 하회탈 웃음이 퍼진다.
울 딸내미 둘도 인사드리겠다 하여 그리한다. 그러고 앉아서 한숨을 돌린다.



아차, 엄마가 배가 빠졌다한다. 허허허. 아들이 사 온 건 빠지면 안 되지.
난 배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하시는 데로 뒤 심부름만 했을 뿐.
아들이 사다 준 배를 뒤늦게 올려본다. 크기도 엄청나다.
어휴 엄마도 아들도 손은 엄청 크다.



엄마의 귀한 아들은 추석전날 내려와서 성묘를 하고 당일 올라갔다.
그는 결혼 후 올케네와 명절을 보냈다. 집도 음식도 대접도 훨씬 나으리라.

엄마와 아빠는 명절엔 딸내미들과 함께 했다.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얼굴 보기 힘든 귀한 아들.
올케도 명절에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게 당연하기에 엄마와 아빠는 그리하라 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호인에 평화주의자다.
장례식 때 회의를 해서 우린 아빠기일에 성묘만 하기로 했다.
그 결정에 따르라 나도 한마디 거들어본다. 나도 평화주의자다.



남동생 가족은 엄마 집에서 하루 밤도 함께 보넨 적이 없다.
집이 좁아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겐 그 또한 그것이 최선이리라.
그저 각자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효도의 온도차는 편차가 심하다.



음식준비의 힘겨움을 아는 나는 추석전날부터 가서 파 다듬기부터 도왔다.
새벽에 일어나 손가락을 기름에 튀겨가며 전을 부쳤다.
땀에 샤워를 하며 그저 그렇게.
몇 년이나 하시겠나?. 엄마 나이 80세이다.
아빠를 향한 애잔한 마음이 이제 좀 덜 하시길.
그리움의 크기가 점점 더 작아지길.
이렇게 아빠를 보내고 첫 추석은 지나간다.



난 이런 걸 일 년에 13번을 18년간 계속했었다.
덕분에 공황장애와 깊은 우울로 정신은 피폐함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마음치료는 진행 중이다.
누구든 나처럼 마음에 피고름이 생기지 않기를.



여동생들은 10시쯤 한 명씩 도착했다.
차례로 차려진 밥상에 인사를 올리고 술을 따랐다.
엄마는 곁에서 그저 지켜보셨다.



그제사 엄마는 ’ 콩나물도 안 올렸다.‘ 한다.
내가 ’ 아빠 콩나물 안 드신다 ‘ 한다. ’
아구구 끝도 없네. 찐사랑이려니.
‘복도 많은 울 아빠. 이 한 세상 잘 살다 잘 가셨네.‘
사랑하나 얻고, 가면 그 걸로 충분하다.

아빠상의 나물과 밥을 내리고, 밥솥에 밥을 더해 튀각과 김을 더한다.
그저 그렇게 아빠의 아침밥상을 양푼이에 한가득 비벼본다.
그렇게 나눠 비벼 먹는 제삿밥은 탕국과 잘 어울려 맛나다.



각종 전과 과일을 깎아 먹으며, 이야기보따리는 풀린다.
오는 동안 차 밀린 이야기들 사이로 조카주려 울딸내미가 다이소에서 산 티니핑? 핫츄핑?을 건넨다.
아이들은 야호~를 지르고, 색칠하기 퍼즐놀이, 스티커놀이, 옷 입히기에 빠져든다.
둘째는 집을 산 썰을 풀어놓고, 나는 백수가 된 뒤 더 바빠진 일상으로 주저리주저리.



식사를 하고 나니 막내의 아이들이 윷놀이 후에 1,2,3위 경품이라며, 선물을 한 꾸러미 내놓는다.
그렇게 펼쳐진 윷놀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 윷, 걸, 개, 도, 모판에 말들이 힘차게 달리고, 모두의 목소리톤도 점점 올라온다.
일 년에 두어 번 하는 윷놀이는 오늘따라 신명 나고, 게임의 묘수는 불꽃을 튄다.



이 것이 명절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흐르는 시간은 어느덧 헤어짐을 부른다.
아이들은 헤어지기 싫어 울고, 아쉬움은 다음 명절을 기약하며 용돈으로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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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월에 우리는 오랜 병환으로 힘겨워하시던 아빠를 하늘로 보내 드렸다.
이제 4개월 정도가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를 보네 드리는 중이다.
그리움의 사무침에 빠진 엄마. 걱정이다.
그러나, 엄마는 self care 중이다. 강한 척, 괜찮은 척 엄마는 연기를 잘하신다.
시간이 약이리라. 그저 그렇게 믿었는데. 아닌가?.



사구제 제사상을 만들어 보신 엄마는 추석에도 아빠를 위한 음식을 마련하시고 인사를 하시겠다고 한다.
이건 결정을 한 걸 완전히 뒤집은 건데.
사구제에 엄마는 말없이 남동생과 둘이서 제사를 지내셨다.
전을 부치고, 조기를 굽고, 탕국을 만드시고, 지방에 절을 더하여 아빠를 보네 드렸다고 고백을 했다.
그날이 지나고야 남동생은 단체톡에 인증사진을 올렸다.



아빠의 장례식 날 우리는 회의를 했다.
아빠의 제사는 제삿날에 모일 수 있는 가족과 식사를 함께 하는 걸로.
그때 엄마는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그러나, 그 결정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남동생과 함께 사구제 제사를 지내신 뒤, 밝게 웃으시면서 모처럼 밤을 잘 잤다하셨다.
동생은 엄마에게 반주로 술을 먹였다 했다. 동생과 함께여서 더 기쁘셨겠지.
그는 아빠가 병환이 깊어 힘들어하기 전엔 일 년에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려운 잘난 나라의 아들이다.

엄마는 아빠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시구나.
사랑이 깊어 따라갈 순 없을지라도 그렇게 마음을 달래고 있음을.
혼자 있는 시간도 견디기가 어려우신 게지. 그저 짐작만 할 뿐.



말만으로 일로만 하던 사별가족 지지가 내 것이 되자 난이도가 가늠이 안될 만큼 컸다.
그저 옆에 있어 주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한편으로는 부럽다.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신 거다.

어쩌다가 얼굴만 삐쭉 봤던  나는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사 남매를 키우고, 과수원과 밭일을 하시며, 40년 아빠의 암병간호를 했다.



엄마는 아빠를 보내시고, 난 뒤부터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신다.
자신은 늘 씩씩하고 늘 자신은 건강하다 하셨다.
자신은 괜찮다가 몸에 베이신 분. 그녀는 보살이다.
괜찮다는 말을 믿진 않으나,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려 날 설득했다. 그래야 나도 살 수 있으니.
난 늘 내 일과 내 생각 속에 살았다. 난 바빠. 마음에 여유가 없다. 난 세 아이의 엄마고 워킹맘이고, 혼자다.
그녀도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리움을 온몸으로 안은 채, 혼자 밥 먹고 혼자 우셨겠지.



외로움과의 친구 하기 그 자체. 그 느낌 알지. 난 외로움대학 10년 차다.



평소 엄마한테서 오는 전화를 일 년에 한두 번.
그것도 결혼이나 장례 같은 큰 집안일이 있을 때다.
우리는 거의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녀와 난 말수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하지만, 아빠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4년여를 한 달에 서너 번까지 아빠의 개인비서이자, 운전사, 병원 안내자, 상담사, 간호사다.
혹은 아빠를 받아주는 요양병원을 찾아 인근 시설을 헤매는 역할을 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머리에선 쥐가 나고, 운전대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온전한 내 몫.
내 연가는 모두 아빠 차지였다.
엄마는 곁에서 지켜만 보셨다. 엄마도 이젠 팔십 노인이다.



자식과 부부의 죽음을 바라봄에는 온도차가 있다.
그저 바라만 볼뿐, 엄마에게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만 한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인 듯, 그저 그렇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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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허리 아파. 그렇다.
내 허리는 고장이 잘 난다. 세 아이를 허리를 틀어서 자연분만.
허리의 복근이나 등배근육이 조금만 빠져도 허리는 사선으로 틀어진다.
그러면 의자에 앉지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물리치료를 일주일 이상은 받아야, 겨우 원래대로 돌아온다.
겉만 멀쩡해. 엄마도 아빠도. 허리가 약하다. 체형도 유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시리스트는 진행형이다.
쿠팡플레이에서 무료 영화를 본다.
침대에서 뒹굴뒹굴.
배고프면 일어나서 냉장고에 얼려둔 김밥 한 줄을 데워서 먹는다.

뭐 어떨까?. 지금 외국에선 한국문화 바라기가 유행이라지?.
김밥은 마트에서 만들면 한 번에 열 줄씩 팔리고,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일요일에 말아서 얼려둔 김밥은 일주일 동안 유용한 요깃거리가 된다.

제목은 중국 TV드라마 성한찬란이다.
난 중국사극드라마를 좋아한다.
만화에 가까운 중국판 로맨스 드라마라고 보면 된다.
여주인공인 정소상은 태어나자마자 악인의 말 한마디에 전장으로 떠나는 부모와 헤어진다.
악인인 듯 악인 아닌 가족들 속에서 글도 배우지 못하고, 끼니도 못 챙겨 뼈만 남아 몰골은 초췌하다.
그러나, 영특하고 손재주가 남달라서 못 다루는 기관이 없다.

남주인공인 능불의도 사연이 뒤지지 않는다.
전란 중에 고모부에 손에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된다.
복수를 위해 남의 신분으로 살고, 10여 년을 조사하고 증거를 잡아 법에 심판을 받게 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악인은 역시 악인 모든 증거를 없어지게 만들어 복수는 쉽지 않다.

정소상과 능불이의 사랑도 잔잔하면서도 절제되어 아름답다.
그러나, 사랑보다 복수를 택하고 처절하게 아파하는 능불이의 모습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개연성의 고리가 잘 짜여 극의 완성도도 높다.

아무튼, 결국엔 악한 자를 벌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다.
희극이 좋다. 비극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중국판 신데렐라 이야기.
50여 편으로 나눠진 짤을 쿠팡플레이에서 무료로 만날 수 있다.
악인에게 상처받고 사랑을 잃어 아프지만, 진실한 사랑을 믿는 여러분께 추천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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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공무원연금공단 홈페이지에서 퇴직일시금 신청을 해야 한다.
진짜 끝이다. 괜찮다. 이 넘어짐은 숨 고르기일 뿐.
다음 호흡을 위한 심호흡이다.
크게 한숨 쉬고, 천천히 내 쉬면 된다.
오늘까지 연가고, 오늘자로 퇴직이다.
누군가는 공공기관에 다시 취직을 해서 10년 이상의 연금금액을 맞추라 한다.
하지만, 나는 퇴직 일시금으로 부동산을 살 거다.
내 맘대로 한다. 그저 그렇게.

역시,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정신을 부뜨는 건 경제력이다.
난 부동산 중 아파트 계약을 했고, 아파트는 서서히 오르고 있다.  
바닥난 배터리는  한 칸까지 다시 채워진다.

일어나야 해 마야. 일어나. 넌 오늘 할 일을 해.
오늘은 온라인으로 고용청에 들어가 회원 가입을 한다.
워크넷으로 구직 신청도 한다.
고용보험을 받기 위한 교육도 들어야 한다.
그래야 고용보험을 준단다.
모든 게 처음 겪어야 할 나만의 발걸음이다.
이게 퇴직자의 출발이란다.

그래 할 수 있어. 그냥 하는 거야.
그런 뒤에 내일부터 쉬는 거야.

워크리스트를 버리고, 위시리스트 시작이다.

난 쉬는 거야.

아침에 12시까지 늘어지게 자기.
하루종일 영화 보기.
강릉여행 가기.
일단 놀자.
뭐 어떨까?.

한 달 전즈음 아파트를 계약했다. 남들이 말하는 갭투자다.
한 달여 만에 전세가 이천만 원이 올랐다.
내년 4월에는 세입자의 전세계약이 만료가 된다.
그는 2년 자동 전세갱신권을 모두 사용했다.
재계약 시 사천만 원은 더 올려 받을 수 있다.

부동산 사장님은 날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사업수완이 장난이 아니다.
난 백수 부동산 투자자가가 되었다.
오른 전세금으로 작은 공매물건을 입찰할 예정이다.

기다려라. 마야. 천천히 하자.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다. 괜찮아.
내가 쉬는 사이, 나의 자산은 돈을 벌고 있다.

기다려라. 마야. 기다려.
한 달에 300만 원 현금흐름을 만들자.
넌 할 수 있어.

넌 쉬어야 해. 쉬어.
난 쉬는 걸 모르는 일중독이다.

머리를 비워야 해. 그래야 채워지리니.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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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주임님과 입사동기예요.”
’엥 그려?.‘ 몰랐다.
그녀는 나의 입사 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단다.
그저 오래된 동료로만 알고 있던 그녀가 나의 방문간호팀 입사동기일 줄이야.
실제 그녀를  더 오래된 선배로 여기고 있었는데.

아무튼 그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그 순간 잊을 수 없을만치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방문간호팀에서 같이 근무한 기억은 1년 여로 짧았다.
그녀는 한방실, 나는 통합건강관리실로 근무지는 달라졌다.



가끔 점심을 혹은 코로나 시절엔 간식을 함께 먹었었다.
수다는 늘 정겨웠던 걸로 기억한다.
코로나 전쟁 중 드라이브 스루 근무 시,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 수다안주가 된다.
수다로 입을 털고 난 뒤엔 괴로움도 힘든 일도 반으로 줄어든다.
한 번은 월드컵 드라이브 스루에서 코로나 검사를 진행했는데, 끝나고 난 뒤였다.
근처 이름 모를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도 20개 보네 왔다.
미니 빵과 함께. 모자라는 더 드리겠다며.
폭염에 신선한 공기가 순환이 안 되는 방호마스크로 인해 정신은 혼미한 상태였다.
바람이 안 통하는 방호복은 땀이 차고,  벗으면 물이 가득 나오는 상황이었다.
실제 방호복을 입고 요양병원에 투입됐던 직원은 4시간여의 근무 중에 실신한 경우도 있다.

아무튼, 그 아아 한 모금은 생명수와 같았다. 그 달달함과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
그 카페사장님이 진정 든든한 후방부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빌런은 있었다.
나이 많은 한 직원은 근무가 끝나고 방호복을 벗지 않고 돌아오는 앰뷸런스를 탔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혼자만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싫고, 내 몸만 지키겠다는 거다.
밀폐된 앰뷸런스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방호복을 벗은 상태다.
그의 행동은 그의 방호복에 묻은 바이러스를 앰뷸런스에 묻히고, 함께 차에 탄 직원은 코로나에 걸려라.
뭐 그런 뜻이다. 감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그 정도는 아닌데. 상식이 안 통한다.
그것도 현대지성의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사람이.
이 빌런은 현재도 숨 쉬고 있다. ‘개새 0’.

요즘 내가 욕쟁이가 가끔 된다. 미안.



다시 현재시점으로 돌아온다.
‘밥 사 줄게요’ 하는데, 그저 지나는 이야기려니 했다.
약속시간을 한 시간여 남기고, 정확하게 약속 확인을 한 거다.
감동이 밀려온다. 에고공.
‘마야, 너 잘 살았네. 기특하다’

그녀와의 식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큰애 00 이는 병원근무 잘한데요??.'  첫째 ㅇㅇ이는 대학병원 간호사다.
‘울 00 이는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요?’, 아들 하나를 대학에 보넨 그 녀는 아들 걱정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부럽다. 나도 아이 키우는데 이리도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면 하나만 계획했을 텐데.
가르쳐 주는 이도 배운 적도 없는 나는 결혼 모지리다.

울 아이들도 첫째 ㅇㅇ이만 공부에 취미가 있다.
막내는 게임, 둘째는 미술 등 아트 쪽이다.
그저 곁에 있어줄 뿐. 엄마 역할은 딱히!. 아무튼.

쉴 새 없는 우리들의 수다는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안주삼에 와인에 녹아들었다.
‘아, 행복해’. 이 작은 행복에 가슴이 따뜻해질 줄이야.
얼굴 가득 미소를 지닌 그녀는 ‘주임님,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어요.’ 한다.
그 걸로 충분하다. 감사한 일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둘째가 태어나고, 10여 개월 무렵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 나는 일 중독이다.
나에게 주는 선물을  안은채 쉬어보자. 그저 그렇게.

담당 테이블매니저가 디저트를 권할 때까지 수다는 끊어지지 않았다.
이미 충분하다. 배도 마음도 가득 차서 디저트는 사양한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밤바람이 시원타.
소화도 시킬 겸 밤거리를 나란히 걸어본다.
이 또한 좋았다. 평소에 혼자면 지루하리만치 긴 거리인데.
세 정거장이 넘는 길이 둘이라서 짧게만 느껴졌다.
헤어짐에 아쉬움을 더한 채, 우리는 손 인사로 마지막을 나눴다.

우린 그저 전우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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